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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에 쌓인 남자 1947년 9월에 모친상을 치루기 위해 한 남자가 대구를 방문했다. 조국의 해방에도 불구하고 상해에서 뒤늦게 환국하게 된다. 대구는 그를 '장군'이라 부르며 환영대회를 열어 성대히 맞이했다. '이연호'라는 가명을 쓴 이장군은 겸손한 태도로 자기는 일개의 평민인데, 평민의 환국에 과분한 환영절차에 송구하다고 인사하였고 25년간 해외생활에 대한 간곡한 술회가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이장군은 상경하여 정계인사들과 환국인사들과 겸하여 만나고 대구로 돌아온다. 중앙의 각 정당에서 출마종용을 했으나 두문한 채로 국내사정을 살펴보던 중 환국 1개월 만에 뇌일혈로 급사하게 된다. 유고를 묶어 낸 '중국유기'에는 그의 서거를 한탄다며 정하택(당시 동광내과의원 의사)은 이렇게 말했다. 이 남자의 인생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독립운동을 할 때 이연호라는 가명을 썼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연호, 그가 바로 임시정부 의정원 경상도 대표 이상정장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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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최초의 서양화 화가 1917년부터 1919년까지 대구 계성학교에서 도화(圖畫,미술)교사로서 근무하였고 이외 오산,경신,신명 등의 학교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쳤다. 대구 최초의 서양화가로 기록되었으며 서에 및 전각에 능한 서예가로 1921년에 서양화 개인전을 여는 등 다방면에서 근대 대구 문화예술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기록은 불확실하나 증언을 토대로 1910~20년대 초반 대구에서 활동할 당시 살았던 집이 현재 이곳인 대구 계산동 90번지로 알려져 있다. 이상정 장군은 '전각'에도 출중한 궤적을 남겼다. 2010년 모 경매사에서 출품된 인보집(印譜,도장.낙관 등 인장(印章)을 모아 책으로 만든 것)을 살펴보면 시인 이상화와의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이 인보(印譜)집은 총 198엽, 239방의 인장이 찍혀 있으며, 1936년 중추절에 금릉(金陵,남경)에서 쓴 '자서','대서','청남우지'라는 글이 있으며 마지막에 형님이 새겨 준 '상화'와 '이상화'라는 인장이 찍혀 있다. 그 위에 이상화가 푸른색 잉크의 만년필로 '어북경 형정각 만리장상사(북경에서 형님 상정이 새긴 것이다. 만리 떨어진 곳에서 애타게 그리워하다)'라고 써 놓은 걸 볼 수 있다. 이 인보집은 근대 전각사의 지평을 넓혀놓은 자료이면서 이장군의 형제간의 우애를 보여주는 훌륭한 예술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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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상화의 친형 이상정은 중국 대륙에서 '이연호' 혹은 '이직'이라는 가명을 사용했으며 본관은 월성, 자는 관여, 호는 청남, 산은, 아호는 청금산방주인, 월성산인 등 다양한 이름 기록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이시우로 그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아우로는 상화, 상백,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큰아버지 이일우가 경영하던 신학문과 민족정기의 요람이었던 우현서루, 강의원 등에서 공부하였다. 1912년 동경의 성성중학교(육군유년학교)를 마치고 미술학고,상업학교를 거쳐 고쿠가쿠인대학에서 1923년 만주로 망명, '독립전쟁론'에 입각하여 194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을 지낸 독립운동가로, 광복군 창설을 지원하고 무장투쟁을 지휘하였으며 중화민국 육군 소장으로 전역한 군인이다. 그의 아내는 한국 최초의 여류비행사로 기록된 평양 출신 권기옥(1903-1988)여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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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점기 대구인의 전형 '이연호'라는 가명으로 임시정부 기록물에서 1934년부터 드러나며, 이사정은 한국독립당 당원이었으며 다수당이었던 조선민족혁명당 등과 연합해 1942년 경상도 대표로 임시의정원 의원이 된다. 1941년 중국 육군유격대훈련학교의 교수, 1942년 화중군사령부의 고급막료로, 태평양전쟁의 종결과 동시에 육군중장으로 승진되었지만 모든 걸 버리고 대구로 환국한다. 이상정은 자신의 삶을 포장하지 않고 시대정신을 온몸으로 살아가는 강점기 대구인들의 아나키스트적 성향을 전형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중국유기' 23p에는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권기옥 여사와의 결혼식 관련 기록이 'S형에게'라는 제목글 속에 담겨있었다. 형제간 우애있고, 동지간 의리 지키고, 한 여자를 온몸으로 사랑하며 당시 일원의 비용으로 결혼식을 올린 로맨티스트였음을 스스로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