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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환선생 號 : 心蓮 경북 달성(達城) 사람이다. 1910년 정운해(鄭雲海)·최윤동(崔允東) 등과 함께 신배달회(信倍達會)를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1919년 5월 독립운동 비밀연락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사재(私財) 1,300원을 들여 대구(大邱)와 신의주(新義州)에 2채의 가옥을 매입하였다. 또한 1920년 5월 경북 달성(達城)에서 빈민회(貧民會)를 조직하고 회장을 맡아 수성면장(壽城面長) 서재문(徐載文)의 협조로 2,350명의 농민회원을 규합하여 국산품 장려와 농민들의 생활향상에 힘썼다. 한편 1919년 9월 무기구입과 독립운동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중국 상해(上海)로 건너가 임시정부(臨時政府)에 가입한 후 삼남(三南) 지방을 중심으로 군자금 모집의 사명을 띠고 입국하였다. 그리하여 만주에서 권총을 구입하고 사형집행장을 전달받아 군자금 모집활동을 폈으며 1920년 12월 김종철(金鍾喆)·김봉규(金鳳奎)에게 권총과 사형집행장을 교부하여 이들로 하여금 경남 합천(陜川)과 의령(宜寧) 등지에서 군자금을 수합하게 하였다. 그러던 중 일경에 피체되어 1921년 4월 23일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동년 8월 29일 가출옥하였다. 출옥 후에도 1923년 1월 정동석(鄭東錫)에게 권총과 실탄의 보관을 위임하고 독립운동의 기회를 모색하던 중 동년 3월 다시 피체되어 1924년 11월 6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0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26년 8월 16일 신간회(新幹會) 대구지회 총회에서 집행 위원장에 선임되었으며, 1930년 11월 9일 신간회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중앙집행위원으로 피선되어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