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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 작성경위 요지 예로부터 우리민족은 평화를 숭상하고 우호교린을 힘써왔으나 타민족의 외침을 자주 받으며 살아왔다. 그 중에도 일본에 의한 피해가 가장 심하였으니 신라, 고려, 조선으로 내려오며 끊임없던 왜구의 발호와 7년간의 임진왜란이 있었고 근세 백년래 간교한 정략으로 주권마저 앗아가니 한국민은 나라잃은 슬픔 속에 36년을 보냈다. 그러나 하늘도 무심치 않아 민족정기 엄연한 애국지사의 투쟁과 우방의 도움으로 조국광복의 날을 맞아 국권을 회복하였다. 우리는 역사의 순리를 믿고 민족갱생의 길 열어주신 순국열사를 잊을 수 없다. 1919년 기미독립운동을 3.1절로 명심하고 있는 우리는 이때 또 하나의 독립운동인 파리장서의 건을 잊어가고 있지는 않는가 이에 충절의 마을 월촌동에 기념비를 세워 장서를 새기고 그 아래 장서의 작성경위와 요지를 가록하여 길이 남기고자 한다. 3.1운동과 때를 같이하여 전국 유림대표들이 뜻을 모아 일본의 침략상과 한국의 피해실정을 밝힌 글을 지어 파리에 보내어 세계평화회의에 제출하여 한국독립을 탄원하기로 하였다. 유림대표로 곽종석이 추대되어 글 짓고 곽종석 김복한 등 137인이 연서하였다. 김창숙이 주동하여 서울과 영남 각지와 호남 동서부까지 연락하고 경비를 마련하자 장서를 휴대하고 상해로 건너가서 다시 중.영문으로 번역하여 삼종의 장서를 김규식 金奎植편에 파리평화회의에 보내어 국제 여론을 환기시키는 한편 중국 언론기관과 일본에도 발송하였다. 이 사실이 발각되자 일경의 검거·탄압이 심하니 관련자는 옥사 또는 망명하였다. 이때 연서자 5명이 나온 이 마을 월촌동은 일경의 만행으로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파리장서 1420자 대문장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천지간에 만물이 공생하고 일월이 만국에 공명하듯이 세계 만방은 강약 대소의 차가 있어도 상호 존중하는 공약이 있다. 한국은 삼천리 영토에 이천만 백성이 있으며 오천년의 역사를 지닌 만방 속의 한 나라다. 그럼에도 일본은 국세가 강하다고 기만과 불법으로 이웃나라 국토와 주권을 강탈하여 세계 속에서 한국을 없애려 하였다. 병자년 강화조약과 을미년 마관조약에서 한국독립을 인정하고 계묘년 노·일전쟁 때도 한국독립을 도운다 했음은 세계제국이 아는 바이다. 그러다가 한국이 원하는 바라며 독립이 보호로 바뀌고 다시 합병으로 변하여 만방을 속이고 남의 나라를 빼앗으니 이는 한국을 속임이요. 만국공권에 위배되는 일이다. 우리 국민은 죽음을 취할지언정 일본의 노예는 되지아니하리니 평화회의 대표 여러분은 이 충정 살피고 억울한 나라를 구원하여 평화회의의 사명을 다해 주도록 이천만의 뜻을 모아 이 글을 올리니 살펴주소서" 파리장서의건 후 80년의 세월이 흐르고 광복 후 50년이 지난 오늘 충절의 고장 월촌에 파리장서비를 건립하는 뜻은 높고 크다 하겠다. 명하노니 장지산 영기서려 충절 낳은 월촌마을 하늘 높이 우러르면 파리장서비 우뚝섰고 푸르른 민족의 정기 여기와서 감도네. 1997년 정축 7월 일 영남대학교 명예교수 문학박사 청송 심재완 沈載完 짓고 경산대학교 교수 김해 김영숙 金榮淑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