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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월후, 음성군 음성읍 초천1리 1358-5 구례골 경로당옆에 있는 김영익선생 의열추모비를 찾아왔다. 1919년 3월 28일 음성군 음성면 음성시장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3월 18일 천도교인들이 주도한 만세운동이 일어난 후에 전개되었다. 초천리 서당에 다니고 있던 김영익이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정민영과 함께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심하면서 추진되었다. 3월 27일 그들은 우선 서당에 함께 다니던 최만득·정대영 등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함께 만세운동을 추진할 것을 권유하여 이들로부터 적극적인 찬동을 얻은 후 거사일을 음성 장날인 3월 28일로 정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지체없이 선언서와 태극기를 인쇄, 제작하면서 거사준비를 차질 없이 진행시켰다. 거사 당일인 3월 28일 오후 4시경 김영익은 서당 동료들과 함께 음성시장에 가서 준비한 선언서와 태극기를 운집한 군중에게 배포하였다. 그리고 김영익이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장터에 모인 군중들도 이에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시가행진을 전개하였다. 그는 이 일로 인해 같은 해 7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4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