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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조(金遠祚, 1885. 10. 5~1923. 4. 15)는 경기도 이천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 이천에서 만세시위에 참가한 후 망명하여 만주에 있는 대한군정부(大韓軍政府)에 가입하였다. 대한군정부의 연락기관 서울 설치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1920년 1월 2일 서울 낙원동에 사는 부호 신완식의 집에 나타나 군자금을 내놓으라고 주인을 협박하여 현금 120원과 군자금 2만원을 제공하겠다는 증서를 쓰게 해 이를 가지고 사라졌다. 같은 달 25일에 서울 내자동 김상윤의 집과 2월 10일 시내 조정윤의 집에 나타나 군자금과 서류를 탈취한 사건을 일으켰다. 그러나 김원조는 10개월 후 1920년 음력 12월 28일 고향인 이천군 율면 총곡리에 은신하던 중 허원·윤홍선·이정호와 함께 독립단 사건의 주모자로, 그 외 사람은 장물수수로 체포되었다. 김원조는 경성지방법원에서 10년형을 선고 받고 대전형무소에서 옥살이 도중 고문후유증으로 1923년 음력 4월 15일 39세로 순국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