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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빼앗기던 날 이 고장에서 약관의 나이로 망국의 한을 품고 눈물을 삼키며 해외로 탈출하신 분이 계시었으니 그는 바로 우리 괴산이 낳은 독립운동가 정원택선생이시고 그 목적은 나라를 되찾고 민족을 노예로부터 구출하심에 있었으니 당시는 이미 왜적의 마수가 온 강토에 미쳤을때 즉 우리 시골에 그와 같은 대지를 품으신 애국지사가 계실 줄을 그 누가 짐작이나 하였으랴. 선생의 관향은 영일이시며 호는 지산이시고 선조때 전상지호로 유명하신 문청공 송강 정철 선생의 13대손이요 우암 송시열 선생의 고제인 문경공 장암 정호 선생의 9대손이며 위구진사 졸운 정운계공의 차남이시다. 선생은 서기 1890년 경인 9월 27일 중원군 상모면 수면리(당시 연풍군 수면면 원천리)에서 출생하셨고 1930년에 이곳 불갑면 지장리에 이거하셨으니 선산을 따라오심이었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한후로는 항상 비분강개하시던 중 1911년 10월 21세되던 해 왜경의 눈을 피하여 북간도로 건너가셨으니 논산 조소천 선생 권고에 의함이었다. 그리하여 그곳에서 나철 선생의 소명을 받아 중국모범학교에 입학하시어 중국어를 전수하시었고 1913년에는 이상설 선생의 주선으로 상해로 건너가 신규식 선생을 만나 그 곳 동제사에 입사하시었고 1914년 8월에는 계상학교에서 공부하시었고 익년 1월에는 박달학원서 수학하시다가 동년 5월에 상해 조계국제 왜경탐정에 피체되어 문초를 받으셨고 동년 10월에는 전덕진 홍명희등 제씨와 홍앙을 거쳐1915년 1월에 북진 빈월 남대국 마련 등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