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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이 일제의 항거하여 거족적으로 봉기한 1919년 3.1운동은 서울을 기점으로 전국 각지에 메이라쳐 이곳장 청안의 만세시위는 3월 30일 장날을 기하여 매우 조직적이고 극렬하게 전개되었다. 약 3000명의 군중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행진에 들어가니 온장안은 들끓는 함성과 물결치는 태극기로 천지가 진동하였다. 군중들은 주재소와 우편소를 습격하여 순식간에 파괴하고 투석전을 전개하여 기세가 등등하니 왜경의 난폭한 발포로 1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에 격분한 군중들은 두갈래로 나누어 만세시위를 계속하니 왜경들은 모두 도주하였으나 충주수비대의 출동으로 점차 해산하였는데 다음날 31일에도 민중의 분위기는 험악하였다. 이 거사에서 희생된 이찬의, 연병룡과 주동자 이태갑, 장성원, 신강면등은 1977년 독립유공자로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