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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함남 영흥에서 연명학교를 설립하여 교육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913년에는 만주로 건너가 건원학교, 1916년에는 안도현에 도전학교와 북구학원, 1918년에는 장백현에 덕수학원과 왕가학원, 1920년에는 연길현에 쟈피구학원, 1921년에는 이도구학원과 국자가에 팔포강학원을 설립하는 등 민족사상의 고취에 심혈을 기울였다. 1917년에는 한때 체포되어 회령감옥에서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한편 1920년 11월에는 안도현 흥도자에서 대진단을 조직, 청년 2백명을 러시아 보병총으로 무장시켜 독립군을 양성하였으며, 야단의 지도자로서도 활약하였다. 1927년 10월에는 무국주의를 표방하고 원종이라는 종교를 창립하였다고 기소되었으나 혐의가 약하여 무죄 방면되었다. 1928년 이후에는 농촌운동에 몸바쳐 간도 북쪽 노야령산록의 팔도하자에서 최일우·이순서·김광헌가 더불어 다양한 농촌운동을 편 이후, 영고탑에 조선민사를 설치했고, 간도지방 곳곳에 동포사회에서 농우동맹을 조직하여 농민운동의 조직화를 꾀했고, 팔도하자에 어복학원과 하음자학원을 설립하였으며, 진우회를 만들고 농촌운동을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933년 3월 그를 시기하던 공산주의자들에 의하여 이역에서 피살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