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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욱 선생은, 서울에서 출생하였으며, 1919년 3·1독립운동 후 만주로 망명하여 봉천(奉天)에서 광한단(光韓團)·한족회(韓族會)·독립단(獨立團)의 동지들과, 북경(北京)·상해(上海) 등지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시영(李始榮)·신채호(申采浩) 등과 북만의 김좌진(金佐鎭)과의 연락 사무에 종사하였다. 1920년에는 봉천성 연락기관인 윤세용(尹世茸)의 지령을 받고 무기를 국내로 운반하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에는 다시 만주로 망명하여 김동삼(金東三)·채상덕(蔡相德)·고활신(高豁信) 등이 중심이 되어 1922년에 조직한 통의부(統義府)에 가담하여 활약하였다. 1924년에는 김동삼의 명령을 받고 국내로 진입하여 효제동 13번지를 근거지로 통의부 지부를 설치하고, 이 탁(李 )을 지부장으로, 본인외 3명은 참모로서 일하면서 각 지방의 부호에게 협박장을 보내어 군자금을 모집하고자 하였다. 한편 일제 고관과 친일파의 주살, 관공서의 폭파 계획도 세워 시도하고자 하였으나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는 결국 징역 10년형을 받고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1932년 10월 출옥후에는 재차 만주로 망명하여 지하운동을 전개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 출처: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