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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기념비 안내문 조상이 우리에게 물려주신 아름다운 금수강산이 1910년 일제의 침략으로 무참히 짓밟히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1910년 국권을 일제에게 강제로 뺏앗겨 기회 오기를 기다리던 중 고종의 승하하심을 계기로 기미념 3.1운동이 일어났으니 불타는 애국충적앞에 총칼이나 죽음이 두려웠으랴! 성난 파도처럼 퍼지는 대한독립만세 소리는 서울에서 시골에서 메아리쳐 삼천리 방방곡곡이 만세의 함성으로 진동하였다. 3월 16일 화도면에서도 이달용, 이승보, 이재하, 이택하, 이덕재, 이인하, 김우동, 이덕주, 류인명, 홍순철, 윤태익, 윤준, 구영식 제위가 봉기할 것을을 결정하고 연락하던 중 일제에게 발각 거사는 좌절되고 3월 18일 아침 이재하, 이승보, 이택하는 피검되었다. 그날 밤 답내리 월산리의 주민이 총궐기하여 마석우리 병참앞에 쇄도한 후 피검인사의 석방을 요구하며 독립만세를 외치니 그 함성은 천지를 진동하엿고 앞장서 나갔던 이달용, 손복산, 신영희, 유상규, 이교직 다섯분은 일제의 무자비한 촘검에 순국하시고 이재혁, 윤균, 강덕여, 윤정석, 원대현 다섯분도 중상을 당하셨다. 3월 19일 미명의 적들은 또다시 김필규, 이승민, 강선원, 윤성준, 남국우용, 김원석, 권은, 이윤원을 연행하니 모두 수개월씩 옥고를 치르셨고 이복현, 강순필외 수십명도 무수한 곤욕을 당하셨다. 국권을 되찾은지 우리는 이분들의 귀한 피와 목숨에 삼가 머리를 숙이고 그 영전에 깊은 위로와 감사를 드리며 빛나는 애국 애족의 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당초 1985년 화도읍 마석우리 산9-1에 세웠으나 기녑비의 장소가 험난하여 봉기 발원지인 이곳에 전시민의 뜻을 모아 다시세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