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쳔셔를 시보로 받드니 고려 공민왕때 삼중대광 문하시중을 지내고 안정현을 식읍으로 받았는데 고려의 운이 다함을 알고 아드님 합문저후 휘 직경과 함께 식읍으로 내려와 은거하여 조선조에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켰으니 개성 두문동 서원 정절반과 파주 고려대전과 청원 홍양사에 배향되시었다. 저후공이후 보성군수 휘 휘와 죽산군사 휘 경손과 양산군수 휘 유선에 이르기까지 독신으로 내려와다가 6세에 한성참군 휘 계종과 청산현감 휘 연종과 충절공 휘 사종 3형제분계시어 3파를 이루니 선생은 참군공의 14세손이시고 사직공 휘 옥의 12세손이시다. 유가후예로 학문에 힘써 일찍 문객을 얻고 행의가 더욱 돈독하여 가정에선 효우로 가ㅓㅇ을 하고 향중에선 성신으로 사우의 신망이 높으셨다. 그러나 한말에 국운이 비색하여 일제에 의해 국권이 참탈당했으니 경술국치이고 9년뒤 고종의 인산을 기해 만세운동이 전국에 매아리 쳤으니 3.1운동이다. 이때 선생은 향리에서 동지를 규합하여 손삼남 이종갑 엄본성 여원필 권노적 한백석과 함께 3월 29일 진건면 사무소앞에 군중을 모아 독립선언서를 살포하면서 독립만세를 부르짖었으니 우리는 독립국임과 자주민족임을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일제의 총칼앞에 시위는 제압당하고 선생은 구금되셨다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셨는데 옥중에서는 물론 출소해서도 투쟁은 계속되었고 마침내 염원인 조국광복을 맞아했으나 기쁨도 잠시 1951년 1월 10일 세상뜨니 향년은 79이고 묘는 남양주시 오남읍 오남리 선영하이다. 세월은 흘러 선생의 숭고한 의적이 묻혀있다가 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