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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8일 밤 10시에 이달용·김원석·이승면 등의 주도 하에 화도면 월산리와 답내리 주민 200여 명은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달용 등 3명은 일본 헌병에 체포되었으나 화도면 주민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시위를 계속하였다. 1시간 만에 시위군중의 수는 1,000여 명으로 불어났다. 이들은 마침내 마석우리 헌병주재소로 몰려가 검거된 인사들의 석방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시위대의 규모가 급격히 커지고 분위기도 점차 격앙 되어가자 다급한 일본 헌병대는 시위대를 향하여 무차별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발포에 의해 시위대를 이끌었던 손복산·신영희 등 4명이 사망했고, 이재혁·이윤균 등 7명이 중상을 입었다. 일본 헌병들은 다음날에도 시위에 가담한 인사 5명을 체포하여 고문을 가하는 등 가혹한 탄압을 지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