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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고통이 너무 크므로 국권을 회복하는 것이 절실한 소망이었다. 공은 1943년에 한국에서 오래된 유기그릇을 많이 모아서 군자금을 지원하려고 직접 가지고 상해 임시정부를 향해 떠났다. 그러나 가던 도중 기차로선 신의주역에서 갑자기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유기그릇을 압수당하고 체포되었다. 이때 물고문과 심한 구타로 신체가 망가지고 뼈를 깍는 고통을 겪고 함흥감옥에 수감되었다. 이 당시 서울 신당동 자택에는 일본 경찰이 수색을 하여 가족들에게 엄청난 해악을 끼쳤다. 그 후 복역 중에 1945년 조국광복이 되어 풀려나서 고향인 괴산군 자택으로 왔다. 그러나 체포 당시 구타로 인한 하반신이 마비되어 외부 거동을 전못하였다. 이때 부인의 간호와 친척들이 사냥을 하여 도와준 산돼지 피와 여러가지 산짐승의 고기를 많이 장복하고 10여 년 만에 건강이 회복되었다. 이내 용은공의 동생 기선씨와 장남 태홍이 실지 목격하고 겪은 사실이다. 부인은 의성김씨 정순인데 1919년 음 3월 3일 출생하여 1976년 음 12월 28일 졸하였는데 애국지사 남편을 내조하는데 공이 매우 컸다. 장남은 태홍이고 효성이 극진하였으며 자부는 전주이씨 옥주인데 후덕하였고 손녀는 희숙 이동 옥이 경아이다. 태성은 덕이 있고 자부는 연일정씨 정주인데 후덕하고 손녀는 미애이다. 태흥은 덕망이 있고 자부는 전주이씨 영희인데 후덕하고 손자에 동수 동규이다. 애국지사 효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