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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무도하게 토벌하였다. 그후에는 한국을 강제로 점령하고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데라우찌를 총독으로 임명하여 헌병 경찰에 의한 무단통치를 감행하였다. 우리 민족은 국권 회복을 위하여 해외인 만주 중국 러시아와 연해주 미주 등지로 망명하고 일부는 국내에서 악조건을 무릅쓰고 애국계몽운동과 의병전쟁 및 군자금을 보내어 돕는 등 여러 갈래의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조창선 의사는 황해도 평산군 적암면 출신으로 1919년 8월 애국지사 유상열과 서의배와 함께 주비단에 가입했다. 1921년 4월 서의배와 같이 고지면 부호 조치훈 등으로부터 군자금을 조달 임시정부에 송금하였다. 그후 일제의 밀정을 사살한 후 이만석의 집에 은신 중이었다. 이때 일본 경찰들이 습격하여 교전 끝에 체포되어 무거운 체형으로 구타와 물고문을 당하다가 1923년 4월 7일 사형이 집행되어 오직 나라을 위하여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수립 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이곳 퇴촌은 충무공 조영무 선생의 보국충정의 역사가 있는 유서깊은 곳이다.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