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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3·1 독립운동사 1910년 을사늑약으로 일제에게 국권을 침탈 당하자 의병 활동이 거세게 일어나기 시작했고 드디어 1919년 3월 1일 정오에 서울 태화관에서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면서 독립 만세 운동이 요원의 불길 처럼 일어났다. 광주지역에서도 1919년 3월 하순부터 각 면단위로 독립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다. 당시 16개 면이었던 광주에서는 서울과 인접한 중대면 송파를 시작으로 1919년 3월 28일 경안장날을 기하여 오포에서 정제신, 유면영을 필두로 경안면민과 초월면민, 퇴촌면민 등 약 2000여명이 광주 군청에 집결하여 대한 독립 만세를 고창하였으며 진압에 나선 일제 헌병의 발포로 여섯 분의 애국지사가 순국하셨다. 중부면에서는 하루 앞선 3월 27일 남한산성에서 300여명이 집결하여 독립만세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실촌면에서는 1월 6일 400여명이 오향리 면사무소에 집결하여 독립 만세를 부르는 등 3·1운동 독립 만세의 함성은 파도처럼 퍼져 나갔다. 광주지역 만세운동으로 정제신, 유면영, 오수식, 김인택, 임무경 등은 현장에서 체포되어 모진 옥고를 치렀고, 대한민국 정부에서 건국훈장과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제 90여 년 전 대한 독립만세운동의 혼불이 물결쳤던 광주벌을 굽어보는 이곳에 선열들의 숭고한 애국애족의 희생정신을 높이 현양하고 후세에 귀감으로 삼고자 하는 충정을 모아 기념탑을 건립한다. 광주 출신 항일 독립운동 유공자 구연영 : 항일 의병장, 안옥희 : 항일 의병, 구정서 : 항일 의병, 임백윤 : 항일 의병, 김길동 : 항일 의병, 이종훈 : 민족대표 33인, 신익희 : 임시정부 내무부장, 유면영 : 3·1독립 운동, 정제신 : 3·1독립 운동, 김인택 : 3·1독립 운동, 임무경 : 3·1독립 운동, 오수식 : 3·1독립 운동, 오용이 : 3·1독립 운동, 강학희 : 항일 독립 운동, 신정완 : 임시정부 의정원, 신하균: 광복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