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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 성은 백씨요 이름은 일환이며 선조 휴암공 인걸선생의 13세손이다. 대대로 김포군 통진에서 거주하고 성장하면서 성품이 강직하여 백척불굴의 장부이였다. 35세가 되자 기미년 3.1운동시에 만세소리는 땅을 흔들고 봉화는 하늘에 연하니 공 또한 의를 외치며 성태영 박용희 등과 뜻을 같이 하고 장날을 기하여 통진향교에서 독립만세를 부르게 되니 군중이 수백명이 되여 공은 선두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행렬을 이끌고 거리고 나아가 왜경을 뿌리치며 사경을 불원하고 대치한지 몇날에 마침내 왜헌병에게 구속되어 무지한 고문을 당하고 3년동안 감옥살이를 하였다. 슬프다 왜정 30여년말에는 성마저 빼앗아가는 극에 도달하였으니 통탄치 않으리오 쾌재라 강한 놈도 꺾일 날이 있다고 폭정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이 땅에 운이 광복되니 그 마땅 이 나라를 위해 희생한 공을 포상함이 당연하였든것이다. 국정에 분망하여 늦은 감은 있으나 서기 1977년 12월 13일자 박정희대통령 지시로 독립유공자를 조사하여 은전이 지하에 또는 유족에게 밑이니 고인과 유족만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앞날의 애국심을 권장함도 있도다. 슬프다 공은 임종시에 그 아들 재학에게 부탁하기를 타일에 혹시 나라에서 은전이 있더라도 너는 사양하고 받지말라 하였다니 이말을 미루어 보아도 공의 마을가짐을 알고도 남을 것이다. 오래도록 후자의 귀감이 되리로다. 서기 1984년 12월 일 전주후인 최봉수 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