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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영희 선생 동상 건립 취지문 길영희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 중등학교 교사로 교육현장에 몸을 바치셨으며, 유한흥국(流汗興國)의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인천 만수동에서 후생농장을 개간하셨다. 조국이 광복되자 동문과 인천시민들의 간곡한 요청에 의해 인천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셨으며, 공립학교로는 드물게 16년동안 한 학교에서 교장으로 봉직하며 자율적인 교육으로 인재를 육성하셨다. 학생 시절 삼일운동에 앞장 서셨던 체험을 살려, 애국 조회 때에 땀 흘려 새나라를 건설하자고 역설하셨으며, 학생들과 함께 벽돌을 날라 교사를 건축하셨다. 모든 학생이 예술과 체육활동에 참여케 하여 전인격적 완성을 도모하셨으며, 제물포고등학교에서는 동아리의 연합으로 반을 자치적으로 구성해 담임까지 모시게 하셨다. 학생들이 반별로 주관하여 운영하는 강당 조회, 보고싶은 책을 마음대로 꺼내볼 수 있었던 개가식 도서관, 무감독 시험에 이르기까지 인중제고의 학생들은 교육 자치를 체험하고 졸업해서 사회의 등불이 되고 민족의 소금이 되었다. 선생은 웃터골에 인천중학교를 세우신 것이 아니라 사랑의 동산에 세우셨기에, 인천중학교가 연수구로 이사온 뒤에도 선생이 지은 교가가 그대로 불려졌다. 전생의 교육정신을 이어받는 학교라면 그곳이 바로 사랑의 동산이고, 배움의 집이며, 수련의 마당이기 때문이다. 오십년 넘은 무감독 시험과 마라톤이 인천중학교에서 계속되는 것도 선생의 자율적 교육정신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선생은 여름에는 송도에서 학생들에게 수영을 가르치셨고, 가을에는 전교생 마라톤에 앞장을 서셨으며, 겨울에는 문학산에서 토끼잡이를 함께 하셨다. 선생께서 인중제고 교장에서 정년 퇴임하신지 50주년, 인천중학교가 연수구에서 다시 개교한지 10주년 되는 해를 맞이하여 제자와 인천 시민들이 선생의 교육정신을 기리며 이 동상을 세운다. 2011년 11월 4일 許敬震 撰(허경진 찬) 元仲植 書(원중식 서) 安載基 彫刻(안재기 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