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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황요문 고익진 선생의 열변을 듣고 격분하여 이에 동조하였다. 유선생을 선봉으로 결사대 견장을 두르고 극비리에 작성한 태극기를 들고 일시에 강화읍 상하시장을 휘날려 평화시위로 독립만세를 높히 부르짖었다. 그 후 항일만세운동은 계속되어 1919년 3월 17일 장날을 이용하야 구척장신의 지휘자인 선생은 강화읍시장 돌다리를 중심으로 독립만세를 높히 불렀는대 이를 체포하려는 일본경찰을 구타하고 다음날 일경에게 체포되었다. 동 3월 18일 시위대는 구속자를 무조건 석방하라고 협박하였더니 일경은 보안법 및 소모죄로 다스려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고 1942년 8월 17일 51세를 일기로 타계하시다. 선생은 지역사회에서 민족정기를 심어주는 위대한 교훈을 남기어 1990년 8월 15일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어 국가유공자 예우에 따라 묘비 건립지원을 받아 이에 그 유덕을 기리기 위하여 이 비를 세우노라. 서기 1992년 월 일 자 학문 장렬 손 재일 재호 재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