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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일제의 무력통치가 진화되어 문화통치로 제도변화를 꾀해 친일단체가 양성되고 민족분열을 일으키던 격동의 시기에 애국단체들은 여러 곳에 숨어 활동하며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독립지사로 잘 알려진 백범 김구선생이 청년 시절 머물던 강화도 고택 대명현이다. 백범일지에 따르면 1900년 25세 청년 김구는 2월 어느 날 지인을 만나고자 강도 남문(강화읍 남산리 소재)을 거쳐 성안으로 들어가 김주경이라는 사람을 만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김주경은 김구 선생이 교도소에 있을 때 옥바라지를 한 지인으로 알려져 있는 인물로 한국사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죠. 1903년 김구 선생은 구명운동으로 자신의 재산을 탕진한 김주경(김득경)을 만나러 강화도에 왔지만 그를 만나지 못하고 수개월간 이 고택에 머물며 아이들을 가르쳤고, 해방 뒤 또 이 고택을 찾았다고 한다. 해방 전 공식적으로 상하이(上海)에 있다던 김구 선생은 수차례 이 고택을 찾아와 사랑방에 머물며 누마루에서 독립투사들과 회의를 하고 서당을 열어 아이들의 한글교육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 출처 : IFC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