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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상동 칠흑 같은 밤을 이겨 낸 새벽 여기 상동이 우뚝 섰다. 국운이 쇠잔해 숨소리 여리어 갈 때 1885년 이 땅에 보냄 받은 이 설교사 스크랜톤 1889년 이 터를 닦고 복음의 문을 열었다 종로 인경이 자고 남대문이 닫혀도 여기 상동의 종소리는 깨어 온 땅에 울렸다 1900년 예배당 크게 짓고 서울 장안 구석구석 복음의 씨를 심었으니 상동은 한국 으뜸의 교회 1913년 교인수가 2900 한국인 초대목사 전덕기는 민족과 교계의 거목이었다 선교하여 애국하던 이 땅의 교회 큰 자를 내고 지도자를 기른 상동 청년학원을 열고 공옥학교를 세우고 을사조약 반대 상소문을 올리며 청년회장 이준을 헤이그 밀사로 3.1독립선언 33인 중엔 상동 출신 목사가 네 분 눈물과 기도로 항거한 최성모, 오화영, 이필주, 신석구 민족 지도자의 본거지도 되었으니 주시경, 남궁억, 이동녕, 이회영, 이승만, 김구,.... 일제 탄압 속에서 상동은 울었다 1944년 예배당에 빗장이 걸리던 날은 교인도 시민도 함께 울었다. 하지만 정의의 물결 타고 해방은 왔고 상동은 주의 이름으로 굳굳하게 소생했다 상동은 6.25동란의 쓰라림도 이겨냈다 불탄 성전을 고치고 상처 난 가슴을 달래고 십자가 높이 들고 뜨거운 불을 붙였다. 상동의 중흥을 가져온 이, 박설봉 목사 1973년 삼일학원을 인수 운영 1776년 웅장한 새 성전 봉헌하고 같은 해 백화점 새로나 열고 1977년 협성신학교를 설립 교역자 양성 국내외에 상동 지교회 늘려가니 이제는 대 상동 영원한 상동 세계를 향해 크게 외친다 설교하는 교회, 교육하는 교회, 봉사하는 교회 그리고 영원히 주께 영광 돌리는 교회 1984년 10월 9일 상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