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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한, 독립의 꿈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애국지사들은 의병전쟁에 나서거나 애국계몽 운동으로 민족의 실력을 키워 국권을 지키고자 했다. 일제의 탄압으로 국내 활동이 불가능해지자 간도와 연해주에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고 항쟁을 이어갔다. 1919년 3월 1일 우리 민족은 세계에 독립을 선언하고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일제가 총칼로 짓밟았지만 극소수 친일파를 제외하고 전 민족이 일어난 만세시위는 3개월이 넘도록 이어졌다. 식민지 조선인들은 민족의식을 자각하고 민주주의를 체험하며 자유와 평등에 대한 열망을 키워나갔다. 3·1운동 결과 입헌공화제를 표방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간도와 연해주의 독립군들은 무장투쟁을 벌였다. '암살과 파괴'로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한 의열단 활동이 본격화 되었다. 사회주의사상의 확산과 함께 노동자, 농민, 청년, 여성단체가 중심이 된 대중운동이 활발해져 민족 해방운동의 열기는 더욱 높아졌다. 일제가 1931년부터 중국대륙을 침략하자 만주의 항일세력들은 중국인들과도 힘을 합쳐 일본군에 맞섰다. 국내에서는 노동자·농민들이 일제의 수탈과 착취에 대항해 파업투쟁과 소작쟁의를 일으켰다. 일제가 아시아태평양전쟁까지 도발하자 애국지사들은 일제의 패망을 예상 하고 최후의 결전을 준비했다. 한국광복군은 미국·영국 등 연합군과 합동 작전을 폈고, 조선의용군은 팔로군과 함께 전투에 나섰다. 다양한 독립운동 진영은 민족의 역량을 하나로 묶어 해방을 준비했다. 독립의 그 순간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