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9page


559page

청춘만장 앞세우고 끌려간 사람들 일제 침략전쟁이 길어지자 조선인 청장년이면 누구나 탄광·토목 노동자나 전쟁터의 총알받이로 끌려가야만 했다. 일본, 중국, 사할린, 남양군도 등에 동원된 노동자들은 최소 72만 명 이상이었다. 조선인 노동자는 차별적이고 폭압적인 대우를 받았다. 항상 감시받았고 도주하다 잡히면 죽을 만큼 맞았다. 대부분 비위생적이고 위험한 현장에 배치되어 일본인보다 사고율· 사망률이 훨씬 높았다. 각종 명목으로 임금을 공제하거나 강제로 저축시켜 집안의 대들보와 같은 아들과 남편을 빼앗긴 가족들은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다. 병력동원은 1938년부터 지원병(육군·해군·학병)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으나 실상은 행정기관에 의한 강제동원이었다. 1944년 8월부터 시행된 징병 대상은 1924년생이었다. '묻지마라 갑자생'이라 불린 이들은 군속 등 징용, 포로감시원, 지원병이 아니면 징병으로 끌려갈 불행한 운명에 처했다. 군인·군속으로 동원된 40만 명 이상의 청년들 가운데 2만 1천여 명이 희생당했다. 널리 알려졌듯이 수 만 명의 여성들도 여자근로정신대와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되어 강제노동과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당하는 피해를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