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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 / Monument of Korean Confucian Scholars' Independence Movement by Long Letter to Paris 관리번호 10-1-8 / 건립자 :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협회 관리자 : 남산공원관리사무소 / 소재지: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2가 산7-3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유림(儒林)은 한국 독립을 호소하는 심문의 서한을 작성하여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하였다. 곽종석, 김복한을 비롯하여 유림 대표 137명이 연서한 이 서한을 파리 장서(長書)라고 부른다. 파리장서는 일제의 한국 주권 찬탈 과정을 폭로하고 식민 지배의 불법성과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하여 한국의 모든 계층과 사회 집단이 독립을 열망하고 있음을 국내외에 널리 알렸던 서한이다. 파리장서 운동에는 광범한 유림층이 참여 하였다. 기미독립선언시에 유림 대표가 포함되지 않은 것을 수치스럽게 여긴 영남, 호서, 호남의 유림이 서명에 참가하였으며 서명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 외에도 자금을 모집하고 연락을 담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파리장서 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이 많았다. 파리장서를 휴대하고 해외로 파견되었던 이는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이다. 그는 파리장서 운동의 발의자 가운데 한 사람이며, 서명자 규합과 파리장서 문인 작성에도 깊이 관여하였다. 이 장서는 상해임시정부 파견 대표자 김규식을 통하여 파리 강화회의에 제출되었고 또한 각국 대표와 외국 공관과 국내 각지의 향교에도 배포되었다. 일본은 파리장서 운동에 참가한 유림들을 체포 투옥 하는 등 가혹하게 탄압하였다. 이를 제1차 유림단 사건이라고 부르며, 이 사건을 계기로 유림계는 한말 구국운동의 전통을 계승하여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