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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기 말소, 애국투혼을 기리다 1936년 8월 베를린올림픽에서 손기정이 올림픽 신기록으로 당당히 우승, 만천하에 배달겨레의 기백을 떨쳤을 때 동아일보는 그의 가슴에 새겨진 일장기를 지우는 항일투쟁에 앞장섰다. 언론을 통해 독립운동의 최대사건으로 평가되는 이른바 '일장기 말소사건'이다. 이 사건의 주역 이길용(李吉用 1899~? 호는 파하(波荷)) 기자는 인천 영화학교를 거쳐 서울 배재학당에 진학하면서 민족의식을 일깨웠고 이후 일본 도시샤대학에 진학했다. 그는 3.1 독립운동에 자극받아 학업을 중도포기하고 귀국, 철도국에 다니면서 상해임시정부와 연결하는 지하조직망에 참여한 사실로 2년 6개월간의 옥고를 치른 다음 1925년 동아일보 기자가 됐다. 1930년대 들어 스포츠기사의 가로쓰기와 전문용어의 한글표기 등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나간 그는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기자직에서 해직됐다. 광복과 함께 동아일보에 복직한 그는 근대 한국체육사 집대성을 위한 자료수집과 집필에 힘쓰다 1950년 6.25 전쟁 와중에 납북돼 종적을 확인할 수 없는 비운을 맞았다. 정부는 1991년 납북인사 진상조사를 계기로 이길용기자를 국가유공자로 인정,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