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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머 헐버트 / Homer B. Hulbert 1863.1.26. 미국 버몬트(Vermont) 출생. 1949.8.5. 대한민국 서울에 돌아가심. 교육자. 언어학자. 독립운동가.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장 ∎ 경력 1884년 - 미국 다트머스 대학교(Dartmouth College)을 졸업. 1884년 - 유니언 신학대학(Union Theological Seminary) 입학. 1886년 - 조선이 설립한 최초 서양식 교육 기관인 육영공원의 교사로 내한 1891년 - 12월 육영공원(Royall English College) 교사직을 사임하고 미국으로 감 1893년 - 10일 감리교 선교사로 다시 한국에 와서 배재학당 삼문출판사 책임자를 맡음. - 이 삼문출판사에서 배재학당 학생인 주시경이 실습생으로 일함. 1896년 - 서재필과 주시경을 도와 독립신문 창간과 발행에 이바지함(영문판 주필) 1897년 - 한성사범학교 특임 교관. 대한제국 교육 고문. 1898년 - 한국 YMCA 설립 위원장 및 창립총회 의장, 1900년 - 관립중학교(현 경기고등학교) 교관. 1949년 - 7월 29일 대한민국 정부 초청으로 8.15 광복절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 1949년 - 8월 5일 내한 일주일 만에 서거. 외국인 최초 사회장 영결식 후 양화진에 안장. 1950년 - 3월 1일 외국인 최초로 건국공로훈장 태극장(현 독립장)에 추서됨. 2013년 - 대한민국 정부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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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논문 및 저서 1890년 - 세계 최초 순 한글로 만든 교과서 시민권자(세 1892년 - 한글과 세종대왕에 관한 최초 논문 한글(The Korean Alphabet) 저술. 1896년 - 아리랑 등 한국의 전통 음악을 최초로 소개한 한국의 소리 음악(Vocal Music in Korea)을 저술 - 구전으로 내려오는 아리랑 최초 서양식 악보로 채보. 1898년 - 한글, 이두, 한자를 비교한 논문 이두 Itu 저술. 1898년 - 고려와 몽골 관계를 기록한 '한국과 몽골 The Mongols in Korea‘ 저술. 1899년 - 한국어의 영문 표기 ’Romanization of Korean Alphabet' 저술. 1902년 - 한국어의 기원을 고찰한 논문 '한국어 The Korean Language 저술. 1903년- 한국어가 영어보다 우수하다는 논문을 미국 스미스소니언협회 Smithsonian Instititution 연례보고서 학술 난에 기고. 1903년 - 조선왕조 역사서 ‘대동기년大東紀年’ 출간. - 한글 창제 과정을 고찰한 논문 '훈민정음 Hun-min Chong-eum 저술. 1905년 - 종합 역사서 한국사 The History of Korea 출간. "한글과 견줄 문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라고 기술. 1905년 - ‘한국어와 드라비다어의 비교 Comparative Grammar of Korean and Dravidian’ 출간. 1906년 - 한국 문화와 문물, 사회 제도 총서 ‘대한제국멸망사 The Passing of Korea'를 출간. 1908년 - 순 한글 역사서 '대한력사'를 제자 오성근과 함께 출간, 1927년 - 한국 전래 동화 '엄지 마법사 Omjee The Wizard'를 영문으로 출간. ∎ 활동 1893년 - 7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국제설화학술회의에서 단군신화와 한국설화 소개. 1893년 - 영문월간지 '한국소식 The Korean Repository 운영 책임자 겸 공동 편집인. 1895년 - 명성황후 시해 사건 직후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에비슨(Oliver R. Avison) 등과 함께 고종의 침전에서 불침번을 섬. 1901년 - 영문 월간지 '한국평론 The Korea Review'을 창간(주필 겸 발행인). 1905년 - 10월 을사늑약을 저지코자 미국의 루스벨트(Ttheodore Roosevelt) 대통령에게 고종 황제의 친서를 전달하는 특사로 미국 방문. 1906년 - ’헤이그 만국평화회의'를 위한 고종황제 특사로 임명됨. 1907년 -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일본의 침략 행위를 규탄하려고 네델란드 헤이그에 간 고종 황제의 특사 이상설, 이준, 이위종의 활동을 도움. - 헤이그 평화클럽(Peace Club)에서 연설하며 일본의 침략주의를 규탄. - 일본 궁내부대신이 약탈해 간 경천사 석탑의 반환을 세계 언론에 호소, - 일본의 박해로 미국으로 돌아가 매사추세츠 스프링필드(Springfield)에 정착. 1919년 – 3.1운동을 알리며 미국 상원 외교관계위원회에 "한국을 어찌할 것입니까 What About Korea?"라는 제목의 진술서(statement)를 공증서와 제출하여 일본의 잔학상을 고발하고 한국의 독립을 호소. 1945년 - 1907년 미국에 정착한 뒤부터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미국에서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고 이승만, 서재필 등의 한국인 독립운동가들을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