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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凡 金九 先生 母子 略傳(백범 김구 선생 모자 약전) 백범 김구 선생은 우리 민족의 큰 스승이다. 선생은 식민지 시대에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해방 운동에 분단 시대에는 인류 평화에 기여하는 통일 운동에 일생을 헌신하였다. 선생은 1876년 8월 29일 황해도 해주에서 안동김씨 순영과 현풍곽씨 낙원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열아홉에 동학군 선봉장으로 나라를 구하는 일에 앞장섰고 치하포에서는 국모의 원수를 갚아 나라에 의인이 있음을 널리 알렸다. 나라가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위기에 몰린 구한말에는 애국 계몽 운동에 투신하였고 식민지 시기에는 중국으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으로 조국의 광복을 위해 헌신 분투하였다. 해방 후 신탁통치에 반대 궐기하였고 민족분단을 막으려고 남북을 오가며 애쓰시다가 1949년 6월 26일 안두희의 흉탄에 맞아 돌아가셨다. 일생을 민족의 지도자로서 올곧은 길을 걸었던 선생의 뒤에는 항상 어머니 곽낙원 여사가 있었다. 선생의 옥바라지를 위해 인천에서 품팔이를 하며 아들을 격려했던 여사는 선생이 두번재 옥에 갔을 때 "경기감사가 된 것보다 더 자랑스럽다"고 아들의 용기를 북돋았다. 과연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었다. 선생은 인천과 특별한 인연을 가졌다. 첫번째는 치하포 사건으로 인천 감옥에 2년간 수감된 것이요 두번째는 1911년 안악 사건으로 5년간 투옥될 때 다시 인천 감옥으로 옮긴 것이다. 특히 두번째에는 인천 축항공사 노역에 동원되기도 하였다. 두 차레에 걸쳐 인천에서 겪은 수감 생활에서 선생은 민중과 고통을 함께하는 불굴의 민족 지도자로 단련되었으니 선생의 깊은 겨레 사랑은 인천을 통해 얻은 결실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