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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후 다시 파주를 찾았다. 사운 전좌한의 묘를 찾아서 온 경기 파주시 야동동 산17-1 금촌동 낙원공원묘지. 애국지사 전좌한 의사는 호는 사운(沙雲)과 단여(壇如)이며, 구한말 풍운이 감도는 1899년 4월 옥천군 옥천읍 죽향리에서 아버지 전보현과 어머니 문화류씨의 2남2녀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독립운동의 선구자로 20세인 1920년에 이미 납세불문납 문서의 배포 문제로 일제에 투옥되어 1년의 옥고를 치뤘으며, 29세에는 조선총독부를 두 번이나 폭파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민족과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신의 부귀영화를 버리고 자기의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만주독립군 창의단과 조선혁명당 대본영의 주역으로 조선총독부 등 주요관청 폭파작전을 펼치며 옥중에서 인간으로 상상할 수 없는 혹독한 고문과 일제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꽃다운 청춘을 불살랐던 전좌한 의사는 대한민국의 자존을 지킨 독립투사로서 역사에 길이 남을 애국지사이다. 감옥에서 온갖 고문을 받은 전의사는 피폐해진 몸과 정신이상으로 폐인지경에 이르러 가족들의 생활은 아주 비참했다. 독립운동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생활이 어렵자, 행상하는 부인과 함께 이곳저곳 전전하다 장남 원표와 형표는 해방직후 병으로 죽고, 3남 이표는 6.25 전쟁에 참전하여 강원도 인제 전투에서 전사했다. 또 류씨 부인도 휴전직전에 병으로 돌아가 고향 옥천 구읍에 돌아와 동생과 이웃들의 도움으로 겨우 연명하다 김귀섬 여사를 만나 재혼하여 말년을 서울, 인천에서 빈곤하게 살다 1986년 4월 사망하였다. 출처 : 옥천문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