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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진 선생은 민족적으로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했으며, 조선어학회에서 조선말 큰 사전을 편찬한 한글 학자다. 1942년 9월에 이른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함경도의 흥원 경찰서에 구금되어 징역2년을 선고받아 함흥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조국이 광복되자 조선어학회를 복구하고 큰사전의 편찬을 다시 시작하는 한편 연희대학 중앙대학 홍익대학 동국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1951년에 부산으로 피난했다가 이듬해에 서울로 올라와 큰사전 속간에 전념하다가 같은해 11월에 뜻밖의 교통사고로 순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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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인 정태진 기념관(石人 丁泰鎭 記念館) 이 기념관은 파주가 낳은 한글학자이며 독립 운동가인 석인 정태진(石人 丁泰鎭) 선생의 유업을 기리고 후세들에게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자 건립되었다. 기념관이 세워진 이곳은 선생의 생가와 묘소가 자리잡고 있던 고향마을로 최근 택지개발이 되면서 묘소는 광탄면 영장리 선영으로 이장하였고 생가는 철거하여 주초석, 상량목 등을 기념관 건축에 사용하여 선생의 유지(遺址)를 보존하게 되었다. 정태진 선생은 1903년 음력 7월 25일 파주군 금촌읍 금능리 406번지에서 아버지 정규원과 어머니 죽산박씨 사이의 3형제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1925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1931년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과 과정을 마치고 귀국하여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1941년 6월 조선어학회 <조선말큰사전> 편찬원이 되었으며 1942년 9월 이른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함남 흥원경찰서에서 징역 2년의 옥고를 치렀다. 1945년 8월 조국이 광복되어 조선어학회를 복구하고 <큰사전> 편찬을 다시 시작하였으며 틈틈이 연희대학, 중앙대, 홍익대, 동국대 등에서 국어학을 강의하였다. 1951년 1.4후퇴때 부산으로 피란하였다가 이듬해 서울로 올라와 <큰사전> 속간에 전념하였고 1952년 11월 2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순직하였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을 추서 받았으며 1997년 1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1998년 10월 이달의 문화 인물로 선정되었다. 저서로는 <중등국어교본> <고독> <조선고어방언사전> 등과 많은 국어학 논문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