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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이 대지를 덮어도 송죽의 푸름은 변치 않고 총칼이 생명을 겨누어도 의사는 지조를 굽히지 않나니 자연은 상록의 수목으로 아름다움을 더하고 인류 역사는 불굴의 절의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감이라 저 포악한 왜적이 우리 국토를 강점했을 때 목숨을 던져 구국의 선봉에 나선 선열들이 아니계셨던들 어찌 우리 문화와 역사가 온전하였으리오 이 황령산기슭에 청석을 세워 안찬복 공의 행적 일단을 새기는 이유에 있다. 공의 도호는 설암이요 본관은 순흥이니 고려조 신호위 상호군 휘 자미가 시조이며 삼전하여 휘 유가 도학을 창명함으로써 문성의 시호와 문묘의 배향을 받은 이후 대대로 고학과 숭덕이 끊이지 않았음은 세인이 주지하는바 조선조 세종때 문과에 급제하여 공조판서에 오른 휘 지석이 단종 선위에 절의를 지켜 평안도 안주에 복지 이거한 후 자손들의 세거지가 되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