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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끼시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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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특공대원 이정숙 할머니의 증언 1950년 9월 함경북도 성진시에 입성한 국군(백골부대)은 곧바로 G-2대원을 모집하였습니다. 이에 성진여자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나는 19세의 나이로 자원입대하였으며, 정보처 특수공작대 요원이 되어 첩보수집과 인민군 생포의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우리 G-2대원들은 부대 본진에 앞서 적지를 수색하며 길주, 명천, 북경성, 청진, 나남, 웅기, 종성을 지나 계속 북진하였습니다. 계속 이어진 위험한 임무수행과정에서 일부 대원들은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지만 나는 끝까지 백두산에 태극기를 꽂고 오겠다는 일념 하나로 부대에 잔류하였습니다. 당시 국군에 밀려 후퇴하던 인민군들은 낮에는 민간인 행세를 하다가 밤이면 아군과 교전을 벌이기도 했고, 도주하며 죄 없는 민간인들을 죽이는 만행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솔밭에서 집단 학살된 여학생들의 시신, 눈 속에 나뒹굴던 수많은 민간인들의 시신과 같이 참혹한 현장이 곳곳에서 목격되었습니다. 군가를 부르며 북진하는 우리의 피는 끓었고 무적의 용사라 자부하면서 대한에 충성을 다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어느날 밤 부대에 후퇴명령이 하달되었고, 그 길로 우리는 후퇴를 시작하였습니다. 밤이면 날아든 중공군과 인민군의 박격포를 피해 라이트를 끄고 기다시피 하여 후퇴하였습니다. 눈이 쌓여 함경남도 개마고원에서 많은 군수품을 소각하였고 부상병은 헬리콥터로 후송하였습니다. 함흥은 후퇴하며 집결한 동부, 서부, 중부전선의 군과 민간인들이 한데 섞여 아수라장이었고, 바다에서는 뒤쫓는 중공군, 인민군을 제지하기 위한 미함대의 함포사격이 이어졌습니다. 잠시 남하하였다가 다시 전진한다는 다짐을 남긴 채 우리는 엘에스티(LST)를 타고 남하하였습니다. 그때가 1950년 12월 20일이었습니다. - 이정숙, 「자유에 대한 애정이 회환과 고통으로」 6.25참전증언록 中에서 한국전쟁 중 특공대원으로 활동한 이정숙 할머니는 1932년 함경북도 성진에서 태어나 성진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50년 9월 백골부대에서 모집한 G-2특공대에 자원입대해 수색, 정찰의 임무를 수행했으며, 1951년 4월까지 8개월간 복무했다. 이후 부산에 내려와 줄곧 살면서 안보강연, 자원봉사활동 등을 통해 전후세대들에게 전쟁의 잔혹함과 평화통일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