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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한은 충북 제천(提川)사람으로 관로에 나아가 일찍이 정언(正言) 벼슬을 하였고 향리에서 명망이 높은 인물이었다. 을사조약이 늑결되자 분격기의(憤激起義)하여 동지를 규합하였다. 이즈음 문경(聞慶) 일대에서 기의한 운강 이강년(雲崗 李康 ) 의진의 활약상을 들었다. 1907년 김상한은 십 수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운강 의진에 나아가 의진의 별진장(別陣將)으로 임명되었다. 그후 운강이 문경을 떠나 경기도 일대에서 활약하자 따로 독립하여 경북지방 일대의 의병장이 되어 부하 7백 명을 거느리고 문경령(聞慶嶺) 산 아래에서 적군과 교전하였다. 이즈음 그의 부하 조직을 살펴보면, 소모장 이명상(李明相)·이상태(李相泰), 좌익장 이춘삼(李春三), 우익장 원근선(元根善), 군관장(郡管將), 이성천(李聖天) 등이 있었다. 그러나 독립한 후에도 때에 따라 운강 의진과 연합전략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1907년 3월 1일 경북 조령(鳥嶺)에 포진하여 동년 4월 적병 수명을 사살하였고, 11월 문경 동로면에서 적 8백 명과 교전하여 53명을 사살할 수 있었으나 그후 패전하여 잔병 백여 명을 인솔하고 충북 단양(丹陽)으로 퇴각하였다. 1908년 9월 이강년 의진과 합세하여 경상도 충청도를 회복하고자 활동하였으나 실패하였으며, 시골에 은신하였다가, 1917년 10월에 서거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