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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예천(醴泉) 사람이다. 1919년 3월 광무황제(光武皇帝)의 인산에 참례하려다가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후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고향인 예천군 용문면(龍門面)으로 돌아와 권석호(權錫虎)와 함께 사전에 시위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고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여 각 동리에 배부하는 등 예천읍 장날을 이용하여 시위를 일으키기 위해 준비하다가 일경에 심한 감시 때문에 일시 중단하였다. 장날인 4월 3일 드디어 이들은 수백명의 시위군중을 규합하여 면사무소 앞길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고창하다가 일경에 피체되었다. 이해 4월 9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언도받고 공소를 제기하였으나 5월 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