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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경주이씨 팔별후예로 1892년 10월 29일 모산에서 나시다. 한학에 조예가 깊었고 강직한 성품과 뜨거운 애국심은 인근에 명성이 높았다. 민족의 분노가 폭발하든 기미 3.1독립운동 그때에 공은 약관 28세이였다. 뜻을 같이한 권종필 전필현 이기하 투사들과 뭉치여 3월 12일 제천장날을 기하여 수백군중의 선두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그의 함성은 천지가 흔들이는 듯 방방곡곡에 메아리첫다. 그날 왜헌에게 잡히여 옥고 3년 6개월 그러나 그 기개 더욱 푸르렀고 후진양성과 민족정기를 교양하기에 침식을 잊으며 선간두옥에 둔거 왜인을 대함이 없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의 술잔을 들고 비분의 전날을 돼색이던 공의 장한 영자 이제 민족 중흥의 거름으로 1969년 9월 21일 78세를 일기로 영겁으로 가시니 용두산 푸른솔 의림지 맑은 물과 더브러 청사에 길이 남은 표표한 유덕을 추모하여 그 공을 여기에 적음 1970.3.12. 애국지사 이범우 선생 사회장 장의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