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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떨치니 이강년과 더불어 유인석 진영에 합류하여 활동하였으나 오래지 않아 유인석이 의병을 해산하고 만주로 망명하자 그도 유선생을 따라 만주로 가서 삼년간 종사하다가 귀국하였다. 1907년 일제의 강압으로 정미칠조약이 맺어지고 고종이 퇴위하자 의분을 참지못한 그는 다시 이강년과 함께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중군장으로 문경 영천 원주 등지를 전전하며 대수 수십차례의 싸움에서 왜군을 격살하여 그의 신출귀몰한 전술은 왜적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1908년 6월 금수산 까치성 싸움에서 패하여 이강년이 왜군에게 체포된후 그는 부대를 인솔하고 1911년까지 4년간 태백산을 본거지로 항전하였는데 불행히도 경북 순흥에서 왜군에게 잡혀 3년형을 선고 받고 대구감옥에서 복역중 단식끝에 1912년 옥중에서 순절하였다. 그의 유해는 제천 두학동 이강년 묘 아래 안장되었다가 금번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