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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의 성은 윤씨요, 휘는 희순이니 해주윤씨 익상의 따님으로 철종 11년에 한양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품성이 명민하고 부모에게 효순하였으며 기상이 씩씩하고 활달하였는데 16세에 항재 류제원 공에게 시집온 후 그 관후하고 상밀한 솜씨로 어려운 가정을 잘 이끌어나갔다. 그런데 을미년에 이르러 왜적이 민비를 참살하는 사변이 일어나자 춘천에서는 전국 최초로 의병이 봉기하여 맹렬한 투쟁을 전개하게 되었는데 이때에 시부인 외당 선생과 항제 등 온 집안이 여기에 가담하여 싸우게 되었다. 과당이 전장으로 출발한 후 여사는 후원에 단을 몯고 매일 밤 정화수를 떠놓고 의병의 승리와 시부의 무사귀환을 하늘에 비는 한편 왜적의 만행을 규탄하는 포고문과 일제의 앞잡이를 질책하는 경고문을 지어 발포하고 또 병정 노래를 지어 국민의 분기와 의병 참여를 권유하고 의병가를 지어 의병들의 사기를 격려하기도 했는데 특히 역사상 초유의 안사람 의병가를 지어 여성들도 의병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고 심지어 남장을 하고 정보를 수집하러 다니기도 했다. 그 후 정미년에 구 한국군대 해산 사건을 계기로 다시 격렬한 의병투쟁이 벌어지게 되었는데 이때에 과당은 의기청년 6백여명을 모아 주민 수 천명과 함께 남면 가정리 여우내골에서 대약과 강환을 만들며 유격훈련을 실시하니 여사는 참판댁 약암댁 남종댁 가정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