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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토적 복수하게 되었다. 이 때에 춘천의병이 전국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게 되었는데 선생은 습재 이소응 족제 항와 유중악 족질 외당 유홍석 경와 유봉석 등 제공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적을 토벌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미구에 의병이 흐터지게 되었다. 그 후 정미년에 왜적이 고종황제를 강제로 페위하고 적부의 군대를 해산케 하자 각지에서 다시 격력한 의병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때에 선생은 외당 항와 경와 및 유영석 유제곤 박선명 박화지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춘천 진병산과 의암 소가 평주 길리 등지에서 싸웠으나 왜병의 우세한 무력을 감당할 수가 없었고 각처 의병이 모두 해산하게 되었다. 선생은 의병 재거의 기회를 기대하였으나 이미 국세가 기울어 뜻을 이룰수 없었으며 이로부터 선생은 후진양성과 위선보족의 일에 성력을 다하다가 임술년 12월5일에 춘천의 본산리 거제에서 돌아가니 향년이 81세로 본산리의 가지동 후록 간좌에 안장하였다. 선생의 국권수호를 위한 의병활동에 대하여 국가에서는 광복 후 임술년 8월 15일에 건국포장을 추서한 바 있다. 선생의 배는 죽산박씨니 교관 성요의 녀이다. 헌종 5년 기해에 출생하여 신유년 9월 8일에 돌아가니 선생과 합폄하였다. 1남 2녀를 두었으니 남 구석은 종백부 중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