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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이준용 선생은 서기 1860년 1월 22일 춘천군 서면 방동리에서 태어나셨으니 본관은 성주요 자는 용서이며 호는 호암으로 품성과 덕행이 온후강직하여 일찌기 한학을 수득하고 동학에 입교하여 정신수양으로 구국운동에 힘쓰셨으니 이는 곧 항일사상으로 이어졌고 일제의 강압이 극렬해진 서기 1904년엔 전답 2만평을 팔아 항일운동자금으로 천도교(교주 손병희)에 헌납하는 등 몸소 실천하는 행동의 수범으로 후학을 가르쳐 후일 독립정신을 널리 고양하는 계기가 되었고 서기 1907년 9월 22일 방동리 의병전투시에는 본가에 의병대장소를 설치하고 침식제공은 물론 의류 의료 지원과 정보의 모집제공 등 전투의 어려움과 문제를 해결하는데 주도적인 역할로 살신호국의 충정을 불태우니 기미년 3.1독립만세운동에 초석이 되었으며 또한 선생께서는 윤도순 박순교 허기준 허현 선생 등과 함께 춘천읍장터에서 독립만세를 크게 외치며 이를 주도하다 왜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당하면서도 서기 1920년 3월 12일 옥중회갑을 맞아 "땅은 내땅이로되 나라를 잃었으니 주인은 나그네되고 나그네는 주인되었네 내 모든것 혼을 부어 자주독립 밑거름하니 광복의 그날이 그날이 오면 춤을 추세 춤을 추세"라는 옥중시를 지어 온겨레의 가슴속에 독립정신을 일깨워주셨고 출옥 후에도 구국의 일념으로 왜경의 감시를 피해 평강 화천 양구 인제 등지를 돌며 젊은이들을 모아 민족의 자주 자립 자위의 애국정신을 고취시키시다 애석하게도 광복을 맞지 못하시고 서기 1945년 2월 20일 86세를 일기로 춘천군 서면 방동리에서 생을 다하시니 서기 1992년 3월 1일 대한민국정부는 선생의 애국심을 높이 찬양하여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고 이에 늦게나마 선생께서 가르치신 민족혼의 높으신 열을 오늘에 되살려 후대의 영원한 정신적 지주로서 면면히 계승하고자 묘역을 정화하고 이 비를 건립한다. 서기 1992년 11월 일 국가보훈처 광복회 강원도지부 후원, 춘천군수 안구순 근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