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page


133page

여기 금병산은 전란의 사화 속메서는 진병산으로 전해온다. 1592년 선조 25년 임진왜란 당시 여주 신륵사와 원주 구미포메서 왜군을 격퇴한 강원도 조방장 원호(元衰) 장군이 춘천에 머물렀을 때 이 일대에서 왜군과 혈전을 펴 진병산이라 별명하게 되었다. 그 후 구한말 의병항쟁 때 또 진병의 기룩으로 민족사에 빛을 남겼으니, 을미(乙未) 의병장 이소응(李昭應) 이진응(李晉應) 유홍석 (御弘錫) 홍재구(洪在龜) 선생 등이 춘천 지방의 의병부대를 이끌고 여기를 넘나들며 진을 쳤고 정미(丁未) 의병 때는 이강년(李康年)의 부대가 1907년 12월 13일 도연합의병의 서울 진격 작전 중 이곳에서 작전을 펴 충국의 핏자욱이 산 기슭을 적셨다. 국난이 일 때마다 나라를 위해 정성들 다 바친 선조의 슬기와 그 용기는 오늘의 국난을 극복하여 만대의 영광을 심으려는 후손의 귀감이 될 것이니 조상의 얼을 기리는 알뜰한 마음을 모아 여기 비를 세운다. 1979년 12월 조동걸 최승순 지음 갈내 이만진 쓰고 춘성군수 석영철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