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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휘는 소응 아명 중만 이명 직신 직신 자는 경기 호는 습재 사정거사 본관은 전주이다. 1852년 8월 7일 춘천 남산면 방곡리에서 조선 선조조 대왕 제 9왕자 경창군 주의 9대손으로 부친 이도재와 모친 고령신씨(만구지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래 품성이 고매한 선생은 화서 이항로의 고제 중암 김평묵과 성재 유중교에게 수학하여 평생토록 존화양이에 근거한 위정척사사상을 실천하는데 힘썼다. 이에 1876년 1월 개항에 반대하여 척사 유생들과 함께 척양소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선생은 1889년 8월 성재가 제천 장담리로 강학 장소를 옮겨 갈 적에 배종하여 스승이 타계(1893년)하기까지 유학에 전념하였다. 일제와 친일 내각이 자행한 1894년의 갑오 왜란 갑오 개혁과 1895년 을미사변 단발령 반포 등을 계기로 각지에서 항일 의병이 일어나자 1896년 1월 선생은 유중악 유봉석과 기의를 의정하고 홍시영 이면수와 이수춘 민영문 유홍석 유중락 등이 통문을 돌리고 민심을 격동시키며 이만응 이경응 정인회 박현성 성익현 등이 사민 1천여 명을 규합 봉기하여 관아를 습격 점령하고 전임 유수 민두호의 생사당을 파괴하는 등 춘천 유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