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page


10page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1908년에 공이 의병 8백여 명을 인솔하고 춘천 방동에 본부를 두고 충북과 신북 등지에서 왜적을 항거하였다. 동년 11월 2일에 왜적이 춘천에 헌병대와 합동하여 겸구대위의 인솔하에 금산강을 도강코자 하였으나 의병의 저항으로 실패하자 새벽에 상류로 도강하여 세 방면에서 불의에 기습을 당하였다. 공은 의병에 대오를 정비하고 결사격전하였다. 그러나 왜병의 정예한 신무기와 중과부적으로 교전 2시간 만에 수많은 의병들과 항전 13년 만에 장렬한 순절을 하니 시년이 42라 희(噫)라 공에 시체도 안장치 못하고 노변에 매몰되여 돌무덤이 되었다. 1945년 8월 15일에 일제의 항복으로 대한민국이 독립되고 순국열사의 공적을 표창하게되어 1962년 3월 1일에 정부로부터 공에게 건국공로훈장 국민장이 수여되었으나 후사도 없고 부친 명재뿐이라 오호라 열사의 말로는 한심할 뿐이라 공에 위대한 공적도 기록미비하여 한국독립운동사를 참고한바 1907년 9월에 강원도 양양지방 충북 청주 쌍호 부근 경상도 송면 부근에서 이언용 이완채 이구채 이인재 신창호 등과 의병 6백여 명이 왜병과 항전하여 전과를 많이 올렸다고 간략한 기록뿐이라 공의 애국애족에 열열한 정신으로 귀중한 생명을 전지에 초개같이 버리니 어찌 위대하다 아니하리오. 공의 묘지도 방치되어 알지 못하였으나 각 신문에 보도되어 알게되자 춘천 종친회에서 합심하여 성금을 수합하여 묘지를 선택 이장하고 석물을 완비하여 공의 위대한 공적을 각명하여 영원불민토록 하니 그 애족에 의의도 크고 고인에 영령도 안은할진저 1988년 무진 11월 1일 충주지씨 종친회 지윤선 근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