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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개화기에 간악한 일제의 침해를 막으려는 온 국민의 분노는 의병으로 봉기되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특히 우리 고장 이천을 중심으로 의병활동이 맹렬하여 왜병의 고전지역이 되었다. 1907년 7월 25일 관리 이근풍 댁에서 김봉기 대장을 비롯한 주하룡 왕옥여 신규희 조상현 원이상 윤평순과 마장면 양촌리 성보영 신창기 관리 이을호는 인근 포군 칠십여명과 창의대를 조직하여 참전하였다. 이 부대는 이천읍에 주둔한 왜병을 습격하여 큰 성과를 거두고 연이어 죽산 음죽 안성 양지 광주 양근 여주 양평 등지에서 유격전으로 왜병과 싸워 큰 전과를 거두었다. 그해 9월 초순 양주에서 김봉기 대장은 친구의 모략에 빠져 체포되었다. 이때 추계리 송병준 매국노 집에 주둔하고 있던 왜병에게 일진회원이 밀고하여 성보영과 신창기 두 의병은 체포되어 애석하게도 오양천에서 총살당하고 논에서 일하던 김연식도 이유없이 총살당하였다. 이런 살해행위는 일제의 잔악한 만행의 일면이기도 하였다. 이에 추모위원회는 두 의병의 거룩한 넋을 달래고 창의 정신을 높이 추모하며 후손에게 귀감을 삼고자 뜻 모아 추모비를 세우는 바이다. 이로서 무명초로 사라져간 두 의병의 고귀한 순국혼이 이제야 창현하게 되니 늦은 감을 금할 길이 없다. 부디 두 분 영령이시여 고이 잠드소서. 1991년 신미 8월 15일 김동옥 지음 이광범 씀 의병 성보영 신창기 추모위원회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