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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세계만방 역사속에 어찌 이같은 퉁분한 일이 있으랴 우리겨레 모두는 천만년이 지나도 이 면면한 고종황제의 배위되시는 명성황후 민씨께서 불공대천의 원수 왜적의 손에 처참하게도 순국하신곳이다. 1894년 갑오경장 지난 뒤 1895년 을미 양10월8일 새벽에 왜제의 사주를 받은 왜인 폭도들은 총칼을 휘두루며 무엄하게도 궁성을 포위하고 坤寧閣(곤녕각)으로 침입하여 황후를 시해한 후 다시 이불에 옥체를 싸서 이곳에 옮겨놓고 석유에 불을 질러 시신마저 없이하여 흔적 조차 없게했다. 아아 히늘도 무심하다 인류역사상에 어찌 이러한 만행이 있으랴 항상 동양평화를 가장하는 저들이 저쟁도 아닌터에 남의 나라 궁중으로 처들어와서 국모를 시해난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옛일을 생각하면서 이곳 녹산에 오르니 주먹으로 가슴을 처 울분 하면서 어서 어서 우리의 힘으로 세계 제일의 부국강병의 나라를 이룩해야 하겠다는 마음 더욱 간절하다. 명성황후께서는 지나치도록 총명 영리하신 여걸이셨다. 황후가 되신 후에 항상 春秋左傳(춘추좌전)을 공부하여 정치와 역사를 연구하셨다. 갑오경장을 전후하여 쇄국정치에서 문호개방이 되니 동북아세아의 요새지대인 우리국토는 마치 이리떼들이 침을 흘리는 고기덩이와 같았다. 이중에도 이웃나라 중국 로국 일본은 우리나라를 집어 삼키려는 각축전을 벌였다. 영특한 명성황후는 탁월한 외교수단으로 以夷制夷(이이제이)의 정책을 써서 용이하게 왜국에게 이권을 주니 아니했다. 왜적은 앙앙불락해서 마침내 우리 국모를 시해한 경술합방을 선포하여 마침내 망국의 바운을 당하게 되었다. 만약 명성황후께서 왜적의 손에 시해 되시지 아니했던들 당시의 나라 형세는 크게 달라겼을 것이다. 명성황후 순국 숭모비 건립위원 일동은 황후께서 가신지 84주년을 맞이하여 황후의 애절하신 순국을 추모하면서 비를 세워 이 사실을 천만대 젊은 분들에게 전한다. 1979년 10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