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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환(曺成煥, 1875~1948. 10. 7)은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출신으로 군 부패 개혁을 주도하다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다. 1906년 신민회를 조직한 뒤 1907년 1월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1912년 일본 총리대신 카쓰라[桂太郞] 암살계획을 세웠으나 사전에 발각, 체포되어 거제도에 1년간 유형되었다. 1919년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무부 차장, 1919년 4월 10일 노령지역 대표의원으로서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과 군무부위원이 되었다. 1919년 8월 7일 만주에서 서일, 김좌진 등과 함께 군정부를 조직하고, 12월 북로군정서로 개편하여 군사부장에 취임하고 청산리전투에 참가하였다. 1925년 신민부 외교위원장이 되고, 성동사관학교의 고문으로 독립군 양성에 노력하였다. 1926년 한국독립유일당 북경촉성회를 조직하고 1927년 상해에서 개최된 각지 촉성회연합회 북경대표로 참가하였다. 1931년 임시의정원 경기도위원, 1933년 그 직에 재선되었으며, 1934년 국무위원에 피선되었다. 1936년 임시정부 국무위원 겸 군무총장이 되었으며, 1937년 한국광복전선 결성에 참가하고, 1939년 임시정부 국무위원에 피선되었다. 같은 해 11월 임시정부 군사특파단장으로 시안에 파견되어 한국광복군 창설에 기여하였다. 1941년 대원수부의 막료로 군무부장에 임명되었고, 다시 최고원수부의 판공처장에 임명되었다. 1945년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귀국한 뒤 한국장교단장, 대한독립총회위원장, 성균관부총재 등을 역임하였다. 정부에서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국내항일독립운동사적지 조사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