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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희는 서울 종로(鐘路) 사람이다. 천도교 제2세 교주인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의 아들이다. 1919년 이채우(李采雨)·김영순(金永淳) 등과 함께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천도교 의정회(議正會) 혁신파(革新派)에 소속되었다가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활동하였다. 1922년 7월에는 천도교 중심의 고려혁명위원회(高麗革命委員會)를 조직하여 부위원장 겸 외교부장으로서 이종훈(李鍾勳)·홍병기(洪秉箕)·송 헌(宋憲) 등과 함께 활동하다가 김광희(金光熙)·강도희(姜道熙) 등과 함께 연해주(沿海州)로 건너갔다. 1926년 4월 5일에는 길림(吉林)에서 양기탁(梁起鐸)·현정경(玄正卿)·오동진(吳東振)·곽종대(郭鍾大)등과 천도교 혁신파인 김봉국(金鳳國)·이동구(李東求)·송 헌(宋憲) 그리고 노령에서 온 그를 비롯하여 이규풍(李奎豊)·주진수(朱鎭秀) 등과 혁명원로들이 독립투쟁을 결의하고 고려혁명당(高麗革命黨)을 조직하게 되자 그는 중앙위원에 선임되어 활약하였다. 1927년 1월 26일 지병이 악화되어 중국 상해(上海) 적십자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영면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