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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될 것으로 평가 받았다. 1977년 25세에 무과에 급제 내직 임용 후 부호군에 승진되었으며 1881년 29세에 충장위(忠壯衛) 장(將)에 임명되어 복무하던 중 다음해 6월 9일 임오군란이 일어나 민겸호가 살해되자 그 시신을 거두어 민영환 집으로 호송하였다. 1894년 전국 동학난이 일어나 이로 말미암아 6월 청일 양군이 충돌하여 일본이 승리 1895년 왜적과 낭인들에 의해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관직을 버리고 귀향하여 양평 광주 여주 양주 등을 돌며 국모시해사건을 알리고 의병 1천여명을 모집하여 훈련을 강향 1896년 남한산성 입성 후 사방에서 운집한 천여명의 의병을 훈련 서울공격을 논의하던 중 친구의 배반으로 1896년 2월 14일 왜적에 의해 잔여 의병들과 함께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2003년 지사의 건국공로를 기리기 위하여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으며 후손으로 양평읍에 이중신이 살고 있다. 2010년 4월 20일에 양평군에서는 지사의 사신취의(捨身取義) 위치명(危致命)의 높은 뜻을 선양(宣楊)하고 추모(追慕)하기 위하여 양평의병 묘역 내에 비석을 세우다. 서기 2010년 4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