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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사의 휘는 석영(錫永) 본관은 영산(靈山)으로 1881년 2월 17일 양평군 강상면 송학리에서 출생하였다. 지사는 1919년 송학리에 거주하면서 3월 29일 양근읍에 장을 보러 가기위해 강상면 교평리 도선장(渡船場)에 나와 있었는데 각지의 만세시위로 민심이 술렁이며 이날은 장이 제대로 서지 않았다. 이때 그는 나루터에 모인 군중들에게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중에 조국이 이미 독립되었다는 말도 들었다. 이에 나루터에 세워놓은 태극기를 들고 "여러분! 우리나라가 독립이 되었으니 기쁘지 않소!" 하며 독립만세를 부르자 100여명의 군중도 여기에 호응하여 만세를 불렀고 나루터는 이내 만세 시위장으로 바뀌어 버렸다. 지사는 이날의 시위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그해 5월 13일 경성 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지사는 즉시 항고 하였으나 6월 13일 경성복식법원과 7월 26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으며 해방 후 옥고의 후유증으로 인해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