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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하여 34세에 의병을 일으켜 용문산을 근거로 적과 싸웠고 여주 가평 홍천 횡성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청운면 삼성리 전투중 부상으로 체포되어 감옥에 구금되었다. 옥중생활 8개월에 다시 완도의 고금도로 유배되었으며 여기서 지사는 귀인을 만나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가서 재기를 꾀하려다가 다시 귀국하여 일제군 한계리에서 5년을 은거하며 후학을 배출하였다. 그러나 의병장 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여주군 대신면으로 이주하여 대곡서당을 열고 후학을 양성하다 형시효가 지나서 과천으로 가서 4년이 지난 다음에 대흥리 집으로 돌아왔다. 지사는 1944년 4월 1일 조국광복도 보지 못하고 생애를 마감하였다. 정부에서는 지사의 건국공로를 인정하여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으며 후손으로 양평읍에 이중신이 살고있다. 2010년 4월 20일에 양평군에서는 지사의 사신취의(捨身取義) 위치명(危致命)의 높은 뜻을 선양(宣揚)하고 추모(追慕)하기 위하여 양평의병 묘역내에 비석을 세우다. 서기 2010년 4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