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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의병 이재복(李再福) 공은 양평군 양동면 삼산리(砥坪縣 上東面 三上里:지평현 상동면 삼상리) 출신으로 용강서사에서 이용강 선생에게서 학문을 수학하던 중 일본의 침략야욕으로 강압으로 한일의정서 한일협약 을사조약(乙巳條約)을 체결하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한국을 식민지화를 가속시키고 헤이그밀사 사건을 빌미로 황제를 강제 퇴위 시키며 국가 존망에 직면하여 전국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일제와 친일주구를 처단하여 국권을 회복하고자 하는데 이재복 공은 서기 1908년에 이정숙(李正肅) 의병부대에서 경기 강원도를 중심으로 의병활동을 하면서 일본수비대와 4-6회의 전투를 수행하는 등 항일무장 투쟁을 하다가 일본군에 체포되어 서기 1908년 9월 21일 경성지방 재판소에서 7년형을 선고받으니 이십대 청춘에 국가와 민족을 위해 옥고를 치르다. 정부에서는 서기 1995년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맹자에 이르기를 사는 것도 내가 원하는 바요 의(義)도 내가 바라는 바지만 이 두가지를 다 가질 수 없다면 의를 가지겠다는 말이 있는데 이재복 의병이야말로 자기의 목숨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義를 선택한 위대한 애국지사이기에 최근 일본이 독도를 자기영토라고 망언을 일삼는 이때에 공의 숭고한 의와 충절의 높은 뜻을 기리고 선양(宣揚)하기 위하여 2008년 8월 30일에 양평의병 묘역에 단비(壇碑)를 세우다. 서기 2008년 8월 30일 양평 을미의병 성역화사업 추진위원회 위원장 안상복 근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