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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천 의병은 양동면 계정리(당시 상동면 죽장리) 둔말 출신으로 서기 1905년 일본의 강압에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고 통감부를 설치하는 등 한국 식민지화에 가속하여 국가 존망 위기에 있어 전국에서 의병(義兵)이 봉기되어 강원도 원주에 의병원수부(義兵元帥府)가 설치되고 여주출신 이인영이 총 대장이 되고 전참찬 허위 선생이 군사장(軍師長)이였는데 허위 선생 제자 김상진 의병부대에서 동향인 차치서 공과 함께 지평 양근 홍천 원주 횡성에서 의병활동을 하며 일본수비대와 누차 무장투쟁을 했고 서기 1907년 8월 21일 강원도 홍천군 동신대 동은교 부근에서 80여 의병과 활동하던 중 박광천 의병은 친일 밀고자 김윤여를 처단하고 일본군에 체포되어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왜곡되게 소위 강도 살인죄로 교수형을 받아 서기 1910년 1월 27일 교수형으로 순국하시니 아... 슬프다. 애국충절에 대의로 일제에 항전하고 친일간적을 처단하였는데 어찌 강도 살인죄겠는가. 정부에서는 서기 1991년에 공으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최근 일본은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며 왜곡(歪曲)과 망언(妄言)을 일삼는 이때에 박광천 애국지사에 구국에 높은 뜻을 기리고 애국정신을 고취(鼓吹)하기 위하여 서기 2008년 8월 30일에 양평의병 묘역에 단비(壇碑)를 세우다. 서기 2008년 8월 30일 양평 을미의병 성역화사업 추진위원회 위원장 안상복 근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