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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乙未年) 8월 일제가 저지른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같은 해 11월 공포된 단발령에 항거하여 이곳 곡수에서 살고 있던 槐隱 李春永(당시 27세)은 지평현 상동면(현 양동면) 퇴양 안종웅(화서 이항로 선생의 후학)과 의병거의를 상의하였고 지평현 장둔면(현 청운면) 김백선장군은 지평 관아에 의병거의를 청하였으나 지평 관아에서는 의병거의를 반대하였다. 이에 이춘영과 김백선은 지평에서 포군 400여명을 모집하여 을미년 11월 28일 이춘영은 단상에 올라 을미의병 즉 국맥[지평의병] 창의의 깃발을 들고 출병하였으며 후에 중군장 이춘영, 선봉장 김백선, 군무도유사 안승우가 이끄는 지평의병은 원주 관아 점령에 이어 제천 충주 단양 등지에서 크게 승리하여 인근지역 의병 봉기에 불을 당겼다. 또한 상동면(현 양동면) 안승우는 제천 장담에서 유인석(훗날 제천의병 총대장)에게서 수학 중 이범직 신지수와 지평의병에 합류하여 의병수가 1천여명에 달했고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하였다. 한편 지평 금리(현 월산리) 금계 이근원 선생(화서 이항로의 후학)은 후학을 양성하여 항일사상을 전파하였으며 전략과 군자금을 지원하다 여주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고초를 당했고 후일 지평의병은 17세에 지평 소년 의병 손용문(손덕화 의병의 아들)과 금계 이근원 선생의 후학인 천낙귀 등이 평민들과 함께 항일투쟁에 앞장섰고 1907년 양근군에서 정미의병, 1919년 기미년 독립만세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지고 만주등지에서 독립운동에 이르기까지 자주독립에 대한 정신적 지주가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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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 곡수! 국맥 을미 지평의병이여 오직 나라와 민족을 위해 분연히 일어나 일제에 항거했던 이춘영 장군과 선열들의 호국정신을 후세 만대에 기리고저 한다. 2022.6 양평군 지평의병정신 선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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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영(槐隱 李春永) 장군 기념비 안내문